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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투라-페투치아-레조넌스 제국
𝐓𝐚𝐢𝐧𝐚𝐭𝐢𝐨 𝐝𝐢𝐞 𝐏𝐢𝐧𝐢𝐭𝐮𝐫𝐚-𝐏𝐞𝐭𝐮𝐜𝐢𝐚-𝐑𝐞𝐳𝐨𝐧𝐲𝐧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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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시띵교(피페레어: Σιδδινγτηρ μιτσραγυε, 자소크어: Lofanùque die Sitinn)피페레 제국의 국교이자 최대종교이며, 아트리아 문화권을 넘어 사트 전역에 이르기까지 약 1억 명의 신자가 있는 유력 종교이다. 자소크력 제2천년기에 태어난 선지자 시띵이 창시했다.

시띵교는 앎을 추구하여, 진정한 앎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내면세계를 각성하여 현실을 초월하는것을 그 목표로 하는 종교이다.

교리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시띵교/교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역사

서곡

혼란시대의 피페레는 화려한 문명은 시들고 사람들 가운데 신용도 관용도 없었다. 당시 도시국가들 사이엔 역병처럼 퍼지는 종교인 야틱교가 있었다. 야틱교는 히에리아 사람 야틱을 교주 겸 시조로 한 종교로 상인을 중심으로한 종교였는데 더 많은 재물을 가진자가 더 탁월한 존재이며, 정예의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게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는 종교였다. 이들은 교주 야틱을 따라 거세를 하는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상인들이 각 도시국가들에서 정치를 하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특징적으로 고리대금을 통하여 모든 부귀영화를 독식하며 사람은 날때부터 그 쓸모가 정해져있다는 이론인 강철의 신화를 추종하였다. 이들은 큰 도시들인 마시모멜리아[1], 프리디아, 소라티아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발아래 두려고 하였다. 이때, 변방이었던 이오폴로스의 히모크 또한 여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빚으로 인해 농노가 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느날 강에서 떠내려온 아이가 발견되니 이 사람이 시띵이다.

이오폴로스 참극

시띵 탄생 직후 일어난 전쟁인 마리오 전쟁으로 인하여, 어려운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고, 야틱교의 교세는 혼란의 시기를 틈타 상인계층에서 농노를 부리는 지주계층으로 전환되었다. 야틱은 죽었으나, 그 후계자들은 지주계층이 되어 세습을 위해 거세를 폐지하고 그들의 총본산을 이올로시스에 정하여 그곳에서 신관를 뽑아 종교집단이 곧 계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때 이오폴로스엔 원래 페투치아 다신교 신관들이 통치자로 있었는데, 야틱교는 이들을 무력으로 몰아내는 일이 있었다. 이때, 많은 이오폴로스 사람이 엑테니아나 실라시아, 로코로코로 건너갔다. 이제 막 유년기의 시띵은 그 참극을 보고선 뒤돌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야틱교의 신관이었던 암비톨로스는 보복을 위해 밭에 소금까지 뿌려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시띵은 이때 야틱교에 대해 반발심을 가졌고, 이미 야틱교의 손아귀였던 엑테니아를 떠나 더욱 산골이었던 실라시아로 들어갔다.

실라시아의 실망

세상은 야틱교가 지배할것만 같았으나, 야틱교도 내부의 군벌이 들고 일어나며, 세상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있었다. 실라시아에 들어간 시띵은 그 총명함을 인정받아 관직을 받아서, 실라시아의 가장 큰 도시인 실로스의 관리가 되었고, 그곳에서 앞으로 절실한 친우가 될 피메나스를 만난다. 피메나스는 금 세공인이었는데, 모든것을 빼앗기고 실라시아에 온 사람이었다.

피메나스는 실로스에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던 시띵을 만났고, 시띵의 제자가 되었다. 실로스 또한 야틱교에게 빚을 지게 되어 성주로 야틱교의 신관이 세워지자 시띵은 관직을 내려두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앎을 가르치다

시띵은 피메나스와 함께 팔라카시아로 가고, 소라티아로 향했다. 소라티아는 페네르 강이 흐르고 있었고 시트레나 강과 하류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시트레나 강을 통해 이동하려고 간 것이었다. 시띵이 팔라카시아에서 소라티아로 가는 길에 있는 도시인 아세로스에 머물때, 사람들에게 글조차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 도시였는지라, 이는 야틱교가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 선생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려놓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지식과 글은 필요가 없다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식은 오롯히 높은 사람들의 것일 수 밖에 없었다.

시띵은 이들에게 설교하였는데, 앎에 대해서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 설교에 감탄하였고 주변에 시띵의 소문이 퍼졌다. 시띵이 소라티아에 도착했을땐 이미 분홍 머리의 뿔도, 꼬리도 없는 뛰어난 사람이 온다는 소문이 돈 후였다. 사람들을 가운데 두고 시띵은 무지가 얼마나 두려운 것이고, 삶은 왜이리 고된지를 무지로 인함임을 설명하였다. 시띵은 복잡한 수사나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비유와 지혜로 가르치기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큰 사람이 되리라 말하며,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게 되었다.

배를 타고 가며, 모다두귀에 두르게 되었는데, 모다두귀에서도 사람들이 소문과 특이한 생김새의 소문을 듣고 구경을 오게 되었다. 시띵은 사람들을 향하여 앎의 필요성을 선언하였고, 진정한 앎에 대해서 논하였다. 이때 야틱교도 하나가 와선, 쇠철보다도 하등한 구리보고 가르쳐보아야 어디에 쓰느냐 반발하자, 시띵은 구리도 잘 녹여서 닦으면 거울이 되고, 철은 쓸모가 많으니 금보다 쓸모가 많다 말하였다. 이 일로 시띵은 야틱교도들에게 불만을 사게 되었다.

시띵은 모다두귀와 프리디아 사이의 시트라란 도시에 정박했는데, 도시의 성주는 시띵을 따르는 무리가 더 늘어날까 두려워 시띵의 권위를 꺽고자 마술사를 불러 기이한 일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 했는데, 시띵은 음율마법에 해당하는 노래로 빛무리를 일으켜 사람들을 회개시켰다. 이러한 이적을 본 사람들은 더욱 큰 소문을 내었고, 성주는 어서 떠나달라 하여 시띵은 프리디아로 향했다.

프리디아

프리디아에 도착한 시띵은 광장에 의자를 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따라온 무리가 프리디아에 모여 결집해 있었는데, 그 무리의 우두머리 되는 사람이 프리디아 사람 아이레나였다. 아이레나는 원래 빵을 굽는 사람이었으나 사람들과 함께 시띵을 쫓아 나선것이었다. 그 열성과 의지를 본 시띵은 그를 가까운 제자로 두었다. 프리디아에서 시띵은 가르침과 더불어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그 추종자들과 교감하였다.

시띵의 추종자가 프리디아에서 아주 불어나게 되었을때, 야틱교의 신관 하나가 와서 토론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식을 뽐내며 자신의 권위를 세웠고, 스스로를 금으로 된 사람이라 칭하였다. 시띵이 말하길, 사람이 금으로 태어난것도 아니고 육신은 늙어 죽게 되어있거늘 어찌 스스로를 금으로 여기냐 하면서, 그가 신관인것은 배움의 기회가 있어 앎이 있기 때문이지 그가 금으로 태어난것이 아니라 하였다. 지식도, 논리도, 이적도 시띵에게 밀리자 군사를 데려와 위협했으나, 노랫말에 도시에 안개가 자욱해 옆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후, 안개는 삼일동안이나 자욱하게 끼어있었는데, 이미 시띵은 몸을 피했고, 시띵을 따르던 무리도 쫓아간 상태였다. 시띵은 강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 시무르큄에 도착하였고, 시무르큄의 가장 큰 도시인 헤네르강과 시트레나 강의 연결에 있어 이름이 붙여진 헤네시아에 기거하게 되었다. 시띵은 헤네시아에서도 가르침을 이어나갔고, 그곳에서 메르소와 에페로스를 가까운 제자로 들였다. 헤네르 강 유역은 야틱교의 교세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헤네르 강에서 시띵은 가르침을 펴고자 했다.

헤네르 강

시띵은 헤네시아에서 헤네르 강의 가장 비옥한 땅이자 큰 도시가 있는 미륌마라브의 미라토시아로 갔다. 미라토시아는 야틱교의 교세가 약하고, 성주인 비엘리오스는 덕이 높다고 유명한 곳이었다. 시띵은 미라토시아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비엘리오스를 만났다. 비엘리오스는 시띵에게 감탄하여 야틱교를 몰아내고 시띵을 높이 모셧다. 그렇게 헤네시아는 첫번째 도시로 불렸고, 미라토시아는 두번째 도시로 불렸다.

미라토시아에서 시띵은 저작활동을 하였고, 미륌마라브의 사람들은 이내 많은 이들이 글을 읽을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야틱교의 두 세력의 수장인 신관 퀴노글로스와 비놀렌티아는 손을 잡고 이올로시스와 미륌마라브 사이의 시에트라를 두고 이를 얻고자 전쟁을 하려 하였다. 시띵은 전쟁은 가장 큰 죄악이라 말하며, 이적으로 군대가 무기를 놓게 만들었고, 야틱교는 크게 두려워하여 시에트라를 넘보지 못했다.

시띵은 자신으로 인해 전쟁이 나는것을 피하고자, 강을 거슬러 올라가 피니투라의 타카시아로 향했다.

타카시아

타가시아에 도달한 시띵과 그 제자들은 도착하자마자 야틱교도들이 맞이하였다. 타카시아엔 야틱교의 신관인 하르다스가 있었는데, 하르다스는 시띵과 공개적으로 토론하였다. 이때, 강철의 전설보다 더 위대한 진리를 선언하는데, 그것이 소피아 신화이다. 소피아 신화를 선언한 후, 하르다스는 회심하여 시띵의 제자가 되었다.

하르다스가 회심했다는 소문이 돌자, 사납기로 유명하고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했던 퀴노글로스 휘하의 신관들은 항상 그 변심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차라리 시띵에게 항복하자는 사람이 나타나며, 신관들이 시띵에게 항복하고 성을 내어주게 되었다. 이후 시띵은 타카시아에서 엔다퀴의 엔으로 갔고, 프리디아의 가혹한 채무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봉기하자 시띵이 입성하여 그들을 지도했다. 이후 퀴노글로스는 근거지였던 히에리아에서 농노들에게 죽을까봐 이올로시스로 도망쳤고, 이후 계속 도망치다가 안테라귀의 어딘가에서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시띵은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결심하였으나, 피니투라와 페투치아 일부밖에 시띵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띵은 시기상조로 알고 상징적으로 마시모멜리아로 입성하고자 했다. 마시모멜리아는 상징적으로 프리디아와 더불어 야틱교의 3대 도시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이올로시스에서 비놀렌티아는 야틱의 유해를 챙겨 정당성을 얻고선 자신의 근거지인 소라티아로 돌아가고, 그곳을 야틱교의 총본산으로 정했다.

이올로시스, 안테라귀, 모다두귀가 시띵의 치세 아래 들어가자, 마시모멜리아는 단 한번도 함락된적 없는 요새인 마시모멜리아 성형 요새의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즈음이 되면 야틱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띵은 대의명분과 정의로움으로 야틱교를 끝내 몰아내고 마시모멜리아로 들어갔고, 이 도시의 이름을 로토시아로 고치고 성주가 되었다.

시띵은 천하를 온전히 하려면 밀레니얼과 함께해야 함을 알았으나, 밀레니얼은 예로부터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때문에 자신의 제자 모두를 남기고 사람몇과 스스로 나서 밀레니얼로 향하였다. 슈루파와 라가소스를 지나 돌아서 간 시띵은 레조넌스인들에게 선언하기를, 나는 뿔도 날개도 꼬리도 없으나 꼬리와 뿔과 날개가 있는 이들과 함께하면 서로가 관계해 모든것을 얻게 된다 하였고 레조넌스인들중 감명을 받은 레조넌스사람 솔로모스는 스스로 시띵을 따르겠다 말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시띵을 믿지 못하니 시띵에게 누군가 돌을 던지자 하늘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며 혼란스러워졌다.

허나, 시띵이 일갈하여 하늘을 가르키자, 하늘은 잠잠해졌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하늘을 통제하느냐며 떠들썩해졌다. 시띵은 스스로를 선언하기를 자신은 너희를 위해 시페라에서 온 사람이라 했고, 시페라가 어디냐 하니 이 불완전한 세계의 원래 되는 세계인 완전한 세계라 하였다. 그는 혼란에서 너희를 구하기 위해 왔다 선언하였고 손에 피한번 안묻치고 천하를 평정하겠다 선언하니 그 담대함과 권위에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다.

소라티아가 포위된 형세가 되자, 비놀렌티아는 팔라카시아를 넘어 시올로 갔고,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졌다. 세상을 피한방울 안흘리고 평정한 시띵은 모든 성주를 모아놓고 나라를 건설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하늘같이 여겨 존경받는 사람이란 뜻의 아도르카라 불렀고, 시띵은 로토시아에서 온 땅의 세 이름을 하나로 해 피페레라 하기로 하고 종교의 종정이 되었다.

로토시아 승천

이후 시띵은 10년간 가르치고 다스리며 살았다. 이후 로토시아 성의 꼭데기, 햇빛이 드는 곳에 올라가 말하니, "물질에 영원은 없으나 기억은 영원하리니, 너희가 날 기념하고 필요한다면 다시 오겠다." 라고 말하고선, 그대로 누워선 죽었다. 가장 열렬히 시띵을 따른 제자인 프리디아 사람인 아이레나는 다음 아도르카가 되어 통치하였다.

이후 제자들이 돌아가며 맡다가, 제자가 다 죽으면 다음은 누가 맡느냐에 큰 문제가 생겼다. 아도르카는 평화를 위해서 시띵의 권위와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생존 제자였던 헤네시아의 메르소가 밀레니얼의 솔로모스를 추천하고 죽었기에 솔로모스가 아도르카를 물려받았으나, 그 다음 아도르카를 선출할 권위가 없었다. 제국의 유력자들과, 그 제자들의 제자인 속제자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아도르카를 선거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다음으로 선출된 이가 아이콘테아의 제레베르였다.

그렇게 제레베르 이후 22세에 접어들기까지 많은 사람이 거쳐갔으나 선거의 특성상 많은 불만이 누적될 수 있었고, 시띵의 권위도 기억하는 자가 줄어 줄어들고 있었다. 22세로 선출되기 전이었던 플라비네아의 코톨레마이오스는 돈을 주어 아도르카가 될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때에 행간에 소문이 돌았는데, 어디선가 시띵을 보았단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플라비네아의 코톨레마이오스는 아도르카가 되었으나 자꾸 시띵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이 동요했고, 정말로 누군가 로토시아의 광장에서, 분홍 머리와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코톨레마이오스는 당신이 누구냐 물으니, 의문의 사람은 모른다 답하였고, 코톨레마이오스가 나는 당신을 압니다라 하니, 의문의 사람은 내가 누구냐 물었다. 그는 당신은 시띵이 아니냐 하니 의문의 사람은 시띵은 소피아라 시페라에서 언제나 있으니 나는 그 사자라 밝혔다. 그리고 시띵이 다시 세상에 날것이니 두려워하라 일렀다.

코톨레마이오스는 두려워서, 야반도주를 감행하였고, 그 자리는 아키목시아의 티올라오스가 올랐다. 하지만 제로소에서 곧이어 피아루나라는 시띵과 정말 닮은 사람이, 시띵처럼 말하고 행동하였고 그 사람이 돌아온 사람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티올라오스는 자신의 아들인 아키목시아의 트리아스에게 세습하였고, 이 소식이 퍼지자 피아루나가 로토시아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피아루나를 아도르카로 치켜세웠고 셀렌드리얼의 트리아스는 프리디아 학파의 지지를 받아 그 자리에 올라간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프리디아로 도주하였다.

이후 셀렌드리얼 학파를 등에 업은 피아루나로 인해 정치에서 패배하자 그는 아키목시아로 돌아갔고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렇게 피아루나가 아도르카에 올랐다. 피아루나는 아도르카는 돌아온 시띵이 한다고 선언하고선, 그 시띵을 찾는 절차를 정하고 돌아온 사람에게만 아르마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프리디아 학파와 미라토시아 학파

프리디아 학파와 미라토시아 학파의 갈등주제는, 시띵의 가르침에 있어서 프리디아가 주장한 성악설이 더 적절한지[2], 아니면 미라토시아가 주장한 성선설이 더 적절한지에 대해서였다.

솔로모시아 장로파와 프리디아 학파

  1. 현재의 로토시아이다.
  2. 이는 율법주의로 이어져, 로토시아가 관료제 사회로 전환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